[책마을] '유럽 르네상스'는 동·서양 교류의 결과물

입력 2021-09-30 18:08   수정 2021-10-01 02:13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르네상스의 ‘정체’는 명확했다. 세인들에겐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같은 친숙한 미술사의 거장들이 활약했던 시기로 다가왔다. 학교에선 이때를 기점으로 중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배웠다. 신에서 인간으로의 인식 전환이 발생한 시기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에는 의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물론 《다빈치 코드》처럼 서양미술사의 걸작들에 담긴 복잡다단한 알레고리를 음모론적이고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시선도 없지는 않았지만….

《글로벌 르네상스》는 19세기 야콥 부르크하르트부터 현대의 에르빈 파노프스키, 어니스트 곰브리치, 카를로 긴즈부르크 등 저명한 역사학자·미술사학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구축해온 유럽 문명의 본질, 근대의 출발점이라는 ‘르네상스관(觀)’에 도전장을 던지는 책이다. 르네상스기의 주요 회화는 물론 권력자의 초상이 담긴 메달, 근세 시대 권위의 상징이자 사치품이던 태피스트리, 마상예술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당연시돼왔던 르네상스 인식의 근간을 흔든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살펴본 르네상스기 미술에는 그동안 간과했던 역사의 흔적이 수두룩하다. 다양한 예술 작품에는 동양(오리엔트)의 손길이 어려 있다. 15세기 예술가들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문화 중심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처럼 서양(유럽)과 동양(중·근동 지역)의 경계는 명확하게 나뉘지 않았다. 자연스레 유럽사, 서양사만의 특수 시기로서의 르네상스론은 빛을 잃었다. 르네상스가 더는 ‘유럽만의 것’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 르네상스기에 인기를 끈 이미지 중엔 기독교 유럽 세계가 ‘배타적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게 대다수였다.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출하는 성 제오르지오의 이미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광은 당대의 런던과 파리, 리스본, 밀라노뿐 아니라 이스탄불의 궁정에서도 똑같이 이해될 수 있게 디자인됐다. 권력자들의 초상이 집대성된 메달, 화려한 태피스트리의 문양도 따지고 보면 그 기원이 동양에 있거나 유럽적 예술 전통에 새롭게 편입된 것이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의 긴장이 높고, 오스만튀르크와 유럽 세계의 정치적 힘겨루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때에도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활발한 문화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문화 교류의 핵심인 사람, 그것도 1급의 예술가들이 두 세계를 왕래했다. 베네치아 도제(최고 통치자)에 의해 ‘대여’ 형식으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에게 파견됐던 젠틸레 벨리니, 코스탄초 다 페라라를 비롯해 피터르 쿠케 판 앨스트 등이 남긴 작품은 유럽 각국과 오스만제국에서 재생산되며 시대의 공통 이미지를 조성했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예수의 수난상은 이불 하산에 의해 이슬람 전통 속으로 흡수됐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은 동양을 폭력과 야만의 적대적 존재가 아니라 교류할 파트너로 바라봤다. 그리고 정치인이 그은 국경을 뛰어넘는 인적·물적 교류를 바탕으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인류 지성사와 예술사의 위대한 성과가 폐쇄와 고립이 아니라 소통과 교류에서 탄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르네상스 예술은 본질적으로 동양과 서양 간의 강력한 연관 관계가 맺은 결실이었다.

300여 쪽의 길지 않은 분량에 해당 분야 전문가가 번역했는데도 웬만큼 심지가 굳지 않고선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단점이다. 르네상스 시기 다양한 지역의 낯선 예술가와 정치인이 수두룩한 데다 수많은 예술품에 대한 복잡한 도상학적 해석이 등장하는 등 논의를 따라가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이 높은 탓이다. 메달과 태피스트리, 마상예술 등 그간 일반 교양과정에서 쉽사리 접하지 못했던 분야의 전문적 논의도 부담스럽다. 꼭꼭 씹어서 소화해야만 그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소파에 누워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는 식으론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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